밖에는 겨울이 한창이다. 네가 이승에서의 삶을 다하고 제천의 명소 굿바이펫으로 떠나는날(1월 29일) 아침, 청주에는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너를 이별하는 우리의 눈물같이... 제천의 경계지에 들어서니 이번엔 싸락싸락...싸락눈이 아프더구나.
루비, 너는 참 슬기롭기가 현자(賢子)같은 아이였다. 우리와 살면서 스스로 만든 절도와 분별속에서 한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결코 유기견이라고 할수없는 몸에 밴 품격이 굳세고 아름다웠다.
삼년전 11월11일, 눈쌓인 강릉유기동물보호소에서 미이라같이 가죽만 남은 네가 안스러워 안고왔었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빠가 너를 안고왔는데, 갑자기 몸을 홱틀어 한 삼 분 아빠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 그다음 엄마를 살폈었지. 그런뒤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아마 강아지가 엄마아빠 관상을 본것은 네가 최초 아닐까싶다.
저승으로 서너발은 빠져든 너를 붙들어 내기 위해 단골 메디컬센터에서 거의 1년에 걸쳐 세 차례의 수술을 하고, 그나마 몸을 추스려 2년간은 산책 잘하고 잘 지낸 셈이었다. 그런 너에게 사람들은 강아지 로또 당첨됐다고 격려했었지.
네가 진주에게 잘 한것은 이미 (작은거인 진주)를 쓸때 첨부됐으니 생략하고,
네가 능숙히 하는 것들을 여기서 모두 기록할수는 없고 간략히 서술해 기념하고자 한다.
껌을 모아둔 그릇에서 그중 좋은 껌을 골라 냉장고에있는 치즈와 바꾸자고 냉장고를 오른발로 두드리기도 한다. 이런건 유기견으로 떠돌때 가게앞에서 돈주고 물건 바꾸는 것을 본 나머지가 아닐까 싶다.
더러 껌과 먹을것 바꾸자는 물물교역이 귀찮아 이제 하지말고 다음에 하자하면, 일미터쯤 물러나 지나가던 녀석이 돌연 입에 문 껌을 내 무릎위로 날리는 것이 아닌가. 어... 이게 뭐야 하면서 손에 들면 이녀석이, 손에 들었으니 받은거다... 하듯 신나게 원하는 품목을 두드려 댔다. 이런건 알면서도 번번히 당하기 마련이다.
반려견들과 제법 많은 인연을 지은 셈이지만, 강아지가 흐느껴우는것은 루비(2세),곧 이녀석이 처음이었다.
2주전 루비는 갑자기 엄청난 전신 마비가 와서 메디컬센터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리가 뻣뻣해지고 목이 자꾸 한쪽으로 돌아가는 신경계통의 대혼란이 일어난 것이었다. 치유할 약이없는 경우라 더욱 가슴아팠다.
처음 일주일은 신경안정제 때문에 정신을 놓고 있다가 그 다음부터 정신을 차리고 상당히 좋아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거의 죽은 녀석을 일으킨 담당의료진의 분투에 감사드린다.
이때부터 면회를 가면 이녀석이 소리죽여 흑흑...흐느끼는 것이었다. 정확히 그 자리에 있는 엄마 아빠인 우리는 마음으로 아 이녀석이 흐느끼고 있구나..눈시울이 같이 뜨거워졌었다.
그후 많이 좋아져 세시간 외출을 허락받아 루비가 그리든 집에 왔었고, 이때 루비는 휴대폰 알람이나 전화벨 울릴때 제대로 짖지는 못하지만 크게 왝왝해서 알려주었다. 고개가 자꾸 한쪽으로 틀어지며, 몸은 뻣뻣해 정신도 없을 녀석이, 비몽사몽간에 건강할때 하던것을 잊지않고 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
그며칠뒤 일곱시간쯤 지내다 다시 병원에 가며, 네가 일어서면 집에 데려오겠다 약속했었다.
그런뒤 설 전날인 1월 27일 면회 안되는 날, 주치의의 배려로 11시쯤 특별면회를 했는데 아, 신기하게도 이 녀석이 네발로 곧게 서서 걸어오는것이 아닌가. (입원실이 좀 넓은 편이다) 얼른 가서 안고 좋아하는 치즈를 잘게 찢어 먹여주니 황홀한 표정으로 잘 먹었다.
좀 있다 너무 피곤할까봐 다시 뉘어 놓으니, 곧바로 일어나 이번엔 걷다가 U턴까지 하는게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좋아질수없는데...그렇지만,치료에 방해될까봐 설쇠고는 집에 데려가마 약속하고, 흐느끼는 녀석을 뒤로하고 우선 돌아왔다.
그날밤, 저녁 여덟시경 심장이 멈췄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 이녀석이 걸어보라는 엄마 아빠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마지막 목숨의 촛불을 앞당겨 끈 셈이다.
그런데 도저히 기적 아니고는 그 마비된 뻣뻣한 몸으로 목조차 흔들림없이 똑 바로 눈을 맞추고 어떻게 부드럽게 잘 걸었는지 이해할수없다. 간절하면 기적도 일어나나보다.
27일 밤에 돌아와 목욕하고, 설날 하룻밤을 또 지내고 29일 오후 한시 굿바이펫에 도착했다. 그 모진 고문같은 아픔속에서 숨지며 얼마나 마음을 도사렸는지, 그 이틀동안에, 심지어 목욕하는 동안도 오줌 한방울 흘린 적 없다. 굿바이펫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녀석이 숨지면서까지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구나...이런건 우리 루비뿐 아니라 모든 반려아이들의 마음이리라.
한실장님이 아이의 유골을 보여주며, 얘의 정확한 나이는 17세에서 한 15세쯤 이상으로는 잡아야 할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유명을 달리한 이 시점에서 너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과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더 오래 살아 과거의 불행함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하는데 하늘은 또 너를 이렇게 불러가는구나.
아마 너는 하늘나라에서 혹독한 수련을 하기 위해 내려온 왕자쯤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책길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강아지가 웃는 얼굴이라고 아우성을 칠만치 너는 하하...하며, 입을 벌렸을때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 보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었었지.
말티즈치고는 균형있게 크고(6킬로), 또한 눈이 시원스레 커서 짤막한 코와 더불어 잘생긴 반려견의 표상이 될만했다. 또 두가지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모질이 좋은 남자아이로서 정의감이 충만해 그야말로 장군감이 될만했다. 머리를 치켜들고 마치 대형견처럼 포효하던 네 모습이 그립구나.
오죽했으면 이 녀석의 아이를 가질수 없음을 한탄했으니...어릴때 중절수술이된 경우다. 그러면 이 훌륭한 아이가 왜 유기견이 되었는가.... 모르긴 몰라도 애지중지하던 원래의 주인이 이민을 갔던, 하늘나라로 떠났던, 없어지고 얘는 엉뚱한 곳에 맡겨진것 아닌가싶다.
넓은 가죽끈을 몇년에 걸쳐 물어뜯고(그 여파로 앞 한쪽 송곳니가 없어지고, 수술할수없는 두 곳의 디스크가 있다) 그 줄을 끌고 유기견으로 다니다. 쓰러져 강릉유기동물보호소로 간것이었다.
우리집에 와서 커피를 몹시 좋아해 조금씩 안줄수 없었는데, 아마 이때 유기견 생활중 커피자판기의 컵에 남은 찌꺼기로 열량을 흡수한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루에 두번 정도는 주로 아빠인 나에게 안겨 산책지로 옮겨져 산책을 하는데. 수술만 세 차례를 한 너를 배려하여 십분쯤 걷고 잠시잠시 안아주곤 했었다.
더러는 엄마를 졸라 차를 타고 좀더 먼곳으로 가기도했지. 이제 삼년을 지나니 엄마 아빠 없이 너혼자 머언 하늘길로 산책을 떠나는구나.
잠이든듯 고요한 너를 보며,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만나고 살다 또 헤어지는건지... 생각은 겨울나무 가지끝 작은새 만큼이나 적막하다.
루비, 네가 간 하늘나라에도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는지 궁금하구나.
생자필멸(生者必滅)...생명있는것은 금석(金石)이 아닌 이상 떠나기 마련이니, 이제 얼마의 세월이 흐른뒤 우리가 다시 반갑게 해후할 날이 있으리라.
네가 떠나는 길이 짧게는 우리집의 누나 강아지들, 길게는 엄청난 선배 강아지들의 밟고간 길임을 깨닫고나면 더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본다.
루비1호와 진주 누나가 이미 떠나간 제천의 굿바이펫에서 다시너를 한실장님같은 맑고 밝은 분의 손길에 맡기게 돼 엄마아빠는 기쁘다.
대부, 굿바이펫의 한실장님을 대하니 문득 떠오르는 단어이다.
우리집 아이들 셋이 이미 이곳 굿바이펫 한실장님의 인도로 하늘나라로 갔으니 굳세고 강하면서도 봄햇살처럼 따스한 대부임에 분명하다.
아니 우리집 아이들뿐 아니라 이분은 이곳을 찾는 모든 반려 아이들의 절대적 대부임에 틀림없다.
루비,
터널을 벗어나니 눈나라였다...이건 과거 노벨상을 받은 설국(雪國)의 첫구절인데, 터널을 벗어나니 별천지였다...네가 가는 길의 저 세상은 이렇지 않겠나 싶다.
이제 지상의 어지러운 눈보라같은 기억들은 잊고 꽃피는 화창한 천상에서의 하루하루를 즐기기 바란다.
정말 너를 사랑하며, 다시한번 눈물어린 마음을 모아, 루비, 안녕...손 흔들어 너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