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쥐가 지병을 앓다가 죽었더라면,
그래서 이 아이도 언젠가 숨이 끊길 수 있는 아이라는 생각을 평소 단 한번이라도 해보았다면 그리도 슬프지 않았을 텐데.
밥쥐는 정말로 갑자기 제 곁을 떠났어요.
9월 12일. 명절을 앞두고 강아지 산이를 미용시키러 갔다가 유선 종양이 만져진다고, 유방암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산이 역시 노견이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결혼을 겨우 이십 일 정도 남겨두었는지라 더 근심이 심했지요.
일단 급히 다음주로 수술 날짜를 잡은 뒤, 미용이 끝난 산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저는,
그 혼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든 추스리고 싶어 이삿짐 정리를 하는 데 저녁 시간을 다 썼습니다.
가뜩이나 심장이 좋지 않아 큰 수술이 부담인 산이에 대한 걱정으로 잠이 오질 않아,
컴퓨터 앞에 앉아 신혼집에 들여놓을 생활용품 등을 사느라 온라인 쇼핑몰을 한참 구경하고 나니 자정이 넘었더라고요.
그 긴 시간 동안, 저는 밥쥐를 거의 신경쓰지 못했어요.
밥쥐는 늘 그렇듯이 무던하면서도 단조롭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인지라,
또한 12년간 정말 단 한 차례도 아픈 적이 없었던 아이인지라 녀석이 아플 거라는 상상 자체가 죄스럽지만.. 저에겐 없는 개념이었거든요.
그리고 밤이 되어 침대에 누워서야 저는 밥쥐를 찾았어요.
밥쥐를 몇 번 부르니 녀석이 와서는 평소처럼 제 곁에 누웠는데, 평소같은 호흡이 아닌 너무나 거친 호흡을 배로 하고 있더군요.
놀랐어요.
저녁 내내 조금 컨디션이 좋진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밥쥐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걸 느낀 시점에선 이미 새벽이었고, 이동수단도 없는 터라 다니는 병원에 우선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고,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부질없이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고 증상을 추측하는 것밖엔 저에게 별 도리가 없었어요.
계속... 그렇게 무기력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죠.
밥쥐는 내내 괴로워했어요.
점점 호흡하는 게 힘들어지는지 침대 밑 제일 구석자리에 들어가 제게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더라고요.
저는 십분, 이십분에 한번씩 침대 밑에 내려와서 녀석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만 녀석이 괜찮은지 확인했고,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겨우 날이 밝았네요.
아침 8시쯤엔가, 새벽 내내 침대 밑에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침대 위로 올라와선 평소처럼 제 곁에 눕더라고요.
마치 평온함을 애쓰는 것처럼. 아니면 마지막을 직감이라도 하듯이.
아침 9시가 되자마자 저는 녀석을 들어서 가방에 넣었어요.
워낙 외출을 싫어하는 애여서 아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가방 밖으로 뛰쳐나오길래 어떻게든 녀석을 다시 가방 안에 넣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지요.
아이가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일단은 엑스레이를 찍으시더군요.
그리고 나선 응급상황이라고 폐에 물이 차있다고, 급히 처치부터 하고 설명을 해주겠다 하시더라고요.
워낙 예민하고 경계가 심한 녀석이라 낯선 사람 손 타는 걸 가만있지 못하는 앤데,
얼마나 아팠으면 수술대 위에 눕혀져 처음 보는 직원 분과 원장님께 몸을 맡겨놓고 누워있더라고요.
링겔을 꽂고 누워있는 상태로 저를 잠깐 10초 정도 지그시 쳐다봤어요.
의사선생님께서 응급처치를 하고 오셔서는 현재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폐에 찬 물을 계속 빼내야 한다고,
집에 가서 기다리고 계시면 계속 조치를 취하다가 중간중간 연락을 준다고 하시더라고요.
집으로 와서 세시간 정도 간격으로 병원과 통화를 했어요.
처음 분당 120회였던 호흡이, 3시간쯤 지나선 90회로 떨어졌다고, 그리고 저녁 5시쯤엔 60회로 줄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다음날은 병원도 오후 1시까지만 진료를 한다고 해서 계속 아프면 어떻게 밥쥐를 혼자 돌봐야 하나 걱정이었거든요.
다음날이면 많이 회복되겠지, 하면서 폐에 물이 찬 사례들을 많이 찾아보고 그랬어요.
병원에서는 지금 당장에선 원인치료보다 증상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주인 입장에선 얘가 뭐 때문에 아픈지 찾는 일에 계속 매달리게 되더군요.
아픈 아이를 맡겨두고 워낙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병원 문이 저녁 7시까지 열려있으니까 밥쥐 상태를 보고 싶으면 내원하시라고 했는데,
멀리 떨어져 계시는 엄마가 그날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저희 집에 오셨던 터라 차마 혼자 계시게 하실 수 없단 생각에,
그리고 호흡수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니 안심한 면도 있어서,
전날 밤을 샜다보니 내일 밥쥐를 돌보려면 잠을 자두어야겠단 생각에...... 괜찮겠다 싶었어요. 안일했죠.
밤 10시 반쯤 전화가 걸려왔어요.
밥쥐 호흡이 갑자기 너무 가빠졌다고. 다시 120회 호흡을 하고 있고 위급한 것 같으니 어서 오시라고.
급하게 택시를 탔어요.
밤 중이라 도로가 밀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제가 탄 차가 코 앞에서 신호를 못 받고 멈추더라구요. 두 번이나...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상태로 겨우 병원에 도착했는데.
의사선생님이 나오시더니, 방금 사망했어요, 하시더라고요.
거짓말 같았어요. 이해가 안 됐어요. 왜 죽어요? 우리 밥쥐가. 바로 전날까지도 누구보다 건강했던 앤데.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냥 제 세계가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밥쥐가 객혈을 한 채로 눈을 못 감고 그렇게 갔더라구요...
집에서 사례를 찾아봤을 때 호흡을 못할 경우 혀가 파랗게 변한다는 증상을 봤는데, 벌려진 입 속에 혀가 푸르게 변해있더라구요.
그 예뻤던 분홍색 발바닥 젤리도 푸르스름하게 변해있고...
정말 방금 죽었는지 온기가 따뜻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 객혈한 피도 방금 토해낸 것 같더라구요.
제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서 오열을 했어요. 마지막 모습 지켜봐주지 못해서. 가는 순간 내 얼굴 보여주지 못해서.
나밖에 모르는 애라서 나를 엄청 찾았을 텐데 그 낯선 불꺼진 곳에서 혼자 고통받다가 갔을 생각하니 마음이 막 미어지더라구요.
워낙 건강했던 애여서 한 번도 그런 죽음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아주 많이 나이가 들어 언젠가 병환을 얻어 무지개다리 건널 거라 여겼는데.
정말 믿기지가 않았어요.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요.
밥쥐의 죽음을 눈으로 봤는데도 집으로 돌아올 때쯤, 문을 열면 밥쥐가 여느 때처럼 집에 있을 것 같았어요.
스크래쳐에서 발톱을 긁고 있거나, 컴퓨터 방 책상에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 저와 눈을 맞추거나, 현관 앞에 나와서 야옹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없더라구요.
밥쥐를 제가 고등학생 2학년일 때부터 키웠어요.
말 그대로 저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를 다 지켜봐준 아이입니다.
고등학생 때 아침 일찍 학교 가느라 새벽 6시에 일어나면서 아무 걱정 없이 자고 있는 밥쥐 볼을 꼬집으면서 '팔자 좋다' 부러워도 했었고,
대학생 때는 몇 번의 연애를 거치며 설레어하고 이별에 괴로워하는 저를 말없이 지켜봐주는 밥쥐의 존재감에 안도했었고,
이제 결혼을 앞두고서는 넷이 이루게 될 새 가정에 행복감을 느꼈던 저입니다.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잠에 들 때까지 녀석이 없는 생활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집안 어디를 가도 온통 밥쥐의 흔적 뿐이에요. 그냥 모든 게 밥쥐예요.
산이의 유방암 소식을 조금만 빨리, 혹은 조금 더 늦게 알았더라면 그날 오후부터 저녁까지 밥쥐의 컨디션 난조를 그렇게 허투루 넘기지 않았을 텐데.
'왜 하필'이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왜 하필 다음날이 명절이고, 왜 하필 엄마는 그날 집에 왔고,
왜 하필 나는 그날 저녁에 밥쥐의 얼굴을 보러 다시 한 번 가지 않았고,
왜 하필 택시는 신호를 두 번이나 놓쳐 긴 시간 멈춰 서 있었고,
왜 하필 산이의 유방암 진단을 그날 받게 되어 밥쥐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나.
그리고 왜 하필 나는 그 전주에 밥쥐를 종합검진했을까.
밥쥐가 워낙 저를 제외한 사람에게 예민해서 병원은 거의 데려간 적이 없는데,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앞두고 노묘인 녀석의 상태를 확인받고 싶어 그 전주에 종합 검진을 맡겼었거든요.
아마 그때 검진했을 때 스케일링 때문에 마취한 것, 구내염 증상이 있어 등에 항생제 주사를 맞은 것 등.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 거라고 합니다.
복막염이 원인일 거라고 추측하셨지만, 어쨌든 그 발현 원인은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고...
검진을 받고 나서 신장이 조금 안 좋다고, 칼륨 영양제를 섭취하는 걸 권유받았었어요.
밥쥐가 사료 외엔 아무것도 안 먹는데, 억지로 칼륨을 먹이느라 아침 저녁으로 사료에 섞어주고 먹게 했어요.
검진 다녀온 후 그것도 스트레스였겠지요.
밥쥐를 그냥 집 안에서 평소처럼 내버려두었다면, 건강한 녀석을 굳이 검진받게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저는 덜 후회했을까요?
아프지도 않은 애를 제 욕심으로 검진시켰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습니다.
평소 회사 다니느라 많이 놀아주지도 못하고, 심장이 안 좋은 산이를 신경쓰느라 밥쥐를 더 많이 케어해주지 못했고,
그런 스스로를 위안하느라 검진을 한 면 있었던 것 같아요.
검진 결과가 괜찮아서, 그것에 위로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었거든요.
그래도 이제 딱 1주일만 지나면 신혼집으로 이사를 가니까,
거기 가면 정말 당분간은 온전히 밥쥐와 산이에게만 신경을 쏟을 수 있게 되는 시간이 주어지니까,
괜찮을 거라고, 불편한 환경을 조금만 참아주길 바랐어요.
신혼집에 밥쥐 캣폴이랑 새 원목 식기를 사놨어요.
물그릇 하나, 밥그릇 하나씩 놓여있는 12cm 높이의 예쁜 원목 식기.
15cm랑 12cm 중에 한참 고민하다가 12cm로 골랐었어요.
예비 신랑이 밥쥐 잘 쓰라고 목재에 오일도 다 발라서 예쁘게 말려놨는데.
신혼집 가구를 사거나 꾸밀 때, 당연하지만 가장 많이 주안점을 둔 건 밥쥐예요.
밥쥐 소파가 털에 데굴데굴 굴러다닐 게 뻔해서 털이 잘 눈에 띄지 않을 회색 소파를 사고,
혹시라도 그곳에 응가를 할까봐 소파 위에 올려놓을 회색 소파 패드를 따로 사고,
식탁 의자에도 실례하는 일이 생길까봐 커버를 벗겨서 세탁할 수 있는 의자를 샀고,
베란다가 참 넓어 보이는 집이라서 여름에는 베란다에 캣폴을 내놓아도 참 쾌적하겠다 싶었어요.
조그마한 2단짜리 사다리를 사놨는데 그걸 베란다에 내놓으면 밥쥐가 거기 앉아 바깥 풍경 내다보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지요.
그 아파트에 고양이들도 많이 돌아다녀서 밥쥐가 구경하기 쏠쏠하겠다 싶었어요.
오늘 예비 신랑과 신혼집에 갔다 왔어요.
거실 화장실 옆에 원목 식기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눈물이 터져서 혼났어요.
밥쥐랑 최근 2년간 살던 집은 담배냄새가 올라오고 소음도 심한 곳이라 얼른 주거환경을 바꿔주고 싶었는데, 그래서 얼른 깨끗하고 넓은 신혼집에 가서 넷이 알콩달콩 살고 싶었는데...
그 일주일을 더 기다려주지 않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롭네요.
특히 마지막을 봐주지 못한 것, 마지막에 내 얼굴 보여주지 못한 것, 밥쥐 고통 속에서 혼자 가게 한 것. 저를 힘들게 한 주원인이었구요.
그런데 딱 하나.
밥쥐 장례를 치르던 날. 실장님께서 만들어주신 영상에 나온 문구가 유일하게 저를 위로해주더라구요.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나누지 못했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더 슬펐을지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내용.
그것만이 저를 조금이나마 덜 슬프게 합니다. 그 문장 때문에 조금이라도 덜 아파요.
밥쥐를 편하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굿바이펫에서 가장 좋았던 시간은, 우리 밥쥐를 안고 예쁘고 공기 좋은 그곳 마당에서 볕을 쐴 시간이 있었다는 거였어요.
밥쥐 눈 감은 얼굴이 그 순간만은 편해보이고 따스해보였어요.
몸이 딱딱하게 굳은 상태에서도 참 예뻤어요. 밥쥐.
저는 밥쥐가 무지개다리 건너 고양이별 가서 저를 지켜봐주기보다, 원래의 제 식구들, 제 형제들을 만나 고양이답게 자기답게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밥쥐가 저를 지켜보고 싶다면, 부디 여기 집에 혼자 남아있지 말고 춘천으로 이사올 때 저희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서 새 집 구경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밥쥐야.
아직은 언니가 너를 놓아줄 수가 없네.
이렇게 많이 슬퍼하면 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다가도 돌아보게 된다는데.
아직은 너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서, 네게 해주지 못한 것, 네게 해주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이 잔뜩 남아서 너를 보내기가 참 힘들다.
아직 그곳에서 나를 보고 있다면, 다음주 있을 산이 수술 잘 되라고 한번 기도해주렴.
집에 돌아온 네 유골함을, 산이가 오래 냄새 맡고 유심히 쳐다봤어.
산이도 너의 부재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조금 침울해져있는 것처럼 보여.
너를 정말 좋아했어.
오빠랑 언니 눈엔 밥쥐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하고 귀엽고 애교 많은 고양이란다.
언제 어디서라도 그 사실만은 잊지 말아주렴.
너는 사랑받았던 고양이라는 것을.
너로 인해 많이 웃고 행복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참 특별한 사이였다는 것을.
